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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의열단 : 목숨을 건 항일 투쟁의 서사

by 소소한쎈언니 2025. 6. 18.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다양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의열단은 무장 투쟁과 직접 행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한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오늘날 우리는 의열단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하며, 그들의 투쟁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자주성을 상징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이후 조선 민중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억압 아래 놓이며 철저한 수탈과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잃었다고 하여 독립의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외에서는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국내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과감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일제에 맞섰던 단체가 바로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의열단((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의열단의 창립과 배경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중국 지린성에서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조선 청년들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입니다. 이들은 3.1운동 이후 비폭력 저항으로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끝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무력 투쟁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의열단의 기본 사상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조선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폭탄 투척, 암살, 파괴 등을 포함한 의열투쟁을 택하였습니다.

의열단은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천명했습니다. 이 선언서에는 "피를 뿌려 독립을 이루자"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 있었고, 이는 당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주요 활동과 투쟁 사례

의열단은 조직 초기부터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군수공장 등 식민지 권력의 상징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거나, 일본의 식민 행정기관과 군사 시설에 폭탄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1920년 12월, 의열단원 박재혁은 부산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경찰서장을 살해하였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1921년 김익상은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졌고, 1922년에는 상하이에서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 시도했습니다. 1923년에는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경찰 조직 내부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는 1926년, 나석주 의사의 의거입니다.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권총으로 무장한 채 저항하다 현장에서 자결하였습니다. 그의 외침 "조선독립 만세!"는 이후 수많은 청년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비록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일제의 지배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한 이러한 투쟁은 국내외에 항일의지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의열단은 단순한 테러 집단이 아니라, 체계적인 무장투쟁 전략과 조직 개편을 통해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1926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정규 군사교육을 받은 인물들도 많았으며, 이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의열단의 해체와 역사적 의의

의열단은 1930년대 중반 이후 노선의 차이와 국제 정세 변화 등으로 인해 활동이 위축되었고,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조직하며 활동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비록 조직 자체는 해체되었지만, 의열단의 활동은 이후 한국 독립운동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열단은 단순히 폭력적인 방식의 저항을 넘어, 식민 지배의 상징을 타격함으로써 민중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고, 독립운동의 결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당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독립군 부대의 무장 투쟁 노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의열단의 활동을 단순한 파괴행위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시 식민지 현실에서 선택 가능한 유일한 무력 저항이었으며,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이들의 결단이었습니다. 이들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주 독립의 뿌리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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