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고대사는 단순한 전쟁의 역사만은 아닙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국가는 한반도와 만주 일부를 중심으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배신하고 다시 손을 잡기도 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삼국의 역사는 정치, 외교, 문화, 전쟁이 뒤섞인 입체적인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 나라의 움직임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로 대립하고 동맹을 맺으며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다툰 전쟁의 흐름을 중심으로, 그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당시의 배경과 각국의 전략적 판단까지 함께 살펴보며 삼국시대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삼국의 성장과 초기 갈등 – 고구려의 남하, 백제의 반격
1세기 후반부터 3세기 초까지 고구려는 북방의 한사군을 몰아내며 요동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백제는 마한을 통합하며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신라는 진한 지역의 여러 소국을 통합하면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시기부터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3세기 중엽 동천왕은 백제를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삼국 간의 긴장이 본격화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세 나라 모두 체계적인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단계였기에 전면전보다는 국지적인 충돌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본격적인 삼국 간 전쟁 (4세기~6세기)
4세기: 백제와 고구려의 패권 다툼
371년 – 백제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
백제는 강력한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고구려를 압박했다. 근초고왕은 직접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큰 승리를 거뒀다. 이는 고구려에게는 치욕이자, 백제에게는 황금기의 상징이 되었다.
391년 – 광개토대왕의 반격 시작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의 등장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백제의 한강 유역을 침공해 58개 성을 함락시키며 백제를 후퇴시켰다. 이후 고구려는 신라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며 동맹을 맺었다. 이것이 삼국 간 최초의 뚜렷한 동맹의 시작이다.
5세기: 신라의 전략적 외교와 생존
신라의 고구려 의존: 고구려는 400년에 신라를 침공한 왜(倭)를 무찌르며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신라는 한동안 고구려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된다.
백제와 왜의 밀착: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의 연합에 맞서 왜와 외교 관계를 강화했다. 특히 개로왕(백제)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견제를 요청했으나, 고구려 장수왕에게 475년 한성(서울)을 빼앗기고 전사하고 만다. 이는 백제의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이전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
이 시기 백제는 왜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며 고구려에 맞서려 했지만, 내부 혼란과 군사적 열세로 인해 고구려의 남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면 신라는 이러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6세기: 삼국의 삼각 동맹과 격돌
551년 – 신라와 백제 연합, 고구려의 한강 점령지 공격
553년 – 신라의 배신과 한강 유역 점령
백제와 신라는 한강 유역을 고구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연합했으나, 신라는 기습적으로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을 독점했다. 백제 성왕은 이에 분노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고 만다.
이 사건은 삼국 간 신뢰의 붕괴를 상징하며, 동맹이라는 것이 언제든 정치적 계산 앞에서 깨질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신라의 성장과 고구려 견제: 이후 신라는 고구려와도 갈등하면서 독자적인 군사력과 외교력을 강화했다. 이 시기부터 신라는 외세인 당나라와의 교류를 확대하며 향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기 시작한다.
시기 주요 동맹 주도국 목표
시기 | 주요동맹 | 주도국 | 목표 |
400년 | 신라–고구려 | 고구려 | 왜로부터 신라 보호 |
475년 | 백제–왜 | 백제 | 고구려 견제 |
551년 | 백제–신라 | 백제 | 고구려의 한강 차단 |
553년 이후 | 신라–당 | 신라 | 백제, 고구려 멸망 위한 외세 협력 |
삼국의 최후와 통일의 시작 – 신라의 전략이 빛나다
660년 – 백제 멸망 (신라+당 연합)
백제는 의자왕 시기에 내부 정치가 혼란스러워졌고,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했다.
668년 – 고구려 멸망 (신라+당)
연개소문 사후 내분이 일어나자 고구려도 흔들렸다.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고구려는 결국 멸망하였다.
676년 – 나당전쟁 종결 및 실질적 통일
당나라가 한반도 지배를 시도하자 신라는 이를 몰아내고 삼국의 옛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비로소 한반도 최초의 실질적 통일 왕국이 성립된 것이다.
660년, 신라는 마침내 백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군대와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연합군은 백제의 중심지 사비성을 점령하고, 의자왕은 항복하게 됩니다. 백제는 멸망하였고, 이는 신라의 통일 전략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668년에는 고구려까지 멸망하게 됩니다. 연개소문 사후 내부 분열이 심화된 고구려는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결국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통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의 옛 영토를 직접 지배하려 하였고, 이에 대해 신라는 반기를 들게 됩니다. 676년, 신라는 나당전쟁을 통해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마침내 실질적인 삼국 통일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보다 군사력에서 열세였음에도, 외교 전략과 장기적인 통합 정책을 통해 한반도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전쟁 승리가 아닌, 정치적 안목과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삼국 간의 관계는 단순한 전쟁사가 아닌 정치, 외교, 문화의 복합적인 기록이다. 동맹과 배신, 침략과 방어 속에서 각 국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성장했고, 결국에는 한반도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하나로 수렴되었다.
참고자료
- 삼국사기 – 김부식 편찬, 고려 인종 23년(1145)
- 삼국유사 – 일연 저, 고려 충렬왕 7년(1281)
-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99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 정병삼, 『고대 한국의 전쟁과 외교』, 민음사, 2010